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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의 불붙은 떨기나무

1907년부터 한 번도 터를 옮기지 않고 김제 백구면을 지켜 온 난산교회의 이야기입니다.

1907알(卵)을 낳은 산(山), 난산

‘난산’이라는 이름은 알을 낳은 산이라는 뜻입니다. 그 이름처럼 근동의 여러 교회가 난산교회를 기점으로 태동하여, 지금은 동네마다 교회가 하나씩 있을 만큼 이 지역이 복음화되었습니다.

1907년, 소금 장수 박윤성 장로의 헌신으로 세워진 난산교회는 1919년 신광학원을 세워 신문명 교육에 힘썼고, 1938년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학교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한국전쟁 때에는 신앙을 지키다 다섯 분의 순교자가 나왔습니다.

가장 오래 목회한 강희남 목사(1964–1988)와 함께 교회는 민주화 · 통일 · 농민운동의 현장에 섰고, 투옥된 목사님을 위해 온 교인이 교도소 앞에서 기도했습니다. 2025년에는 광복 80주년 전국장로대회에서 민주화운동 공적으로 상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시골의 작은 교회가 민족 역사의 한가운데 설 수 있었을까요?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가시 떨기나무 같은 이곳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교회사 「광야의 불붙은 떨기나무 — 난산교회 116년(1907–2023)」에 담겨 있습니다.
History

연혁

2027년, 난산교회는 창립 120주년을 맞습니다.

Pastors

역대 순회목사 및 담임목사

Archive

사진과 영상으로 보는 발자취

사진 출처: 「광야의 불붙은 떨기나무 — 난산교회 116년」

HAPPY NANSAN

고향 교회로 돌아오는 날,
해피 홈커밍데이

2025년 10월 18일, 120년 역사에 처음으로 전국에 흩어진 난산교회 출신 교우들을 초청했습니다. 300명 초청 명단 가운데 100명이 넘는 분들이 멀리 강원도 양구에서까지 오셔서 예배와 친교, 식사를 나누며 함께 미래를 꿈꾸었습니다.

이 만남을 계기로 향우회 ‘해피난산(Happy Nansan)’을 조직했습니다. 해피난산 선교CMS로 매달 조금씩 모아 초등학교 장학금, 붕어빵 전도, 마을회관 반찬 나눔, 어르신 쌀 나눔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해피난산 CMS 알아보기 추억의 사진전
Homecoming Day

홈커밍데이 추억의 사진전

여름 수련회, 성탄 발표회, 결혼식 날… 난산교회에서 함께 자란 우리의 그때 그 시절입니다.
사진을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간직하고 계신 옛 사진이 있으면 교회 사무실(063-546-2606)로 보내 주세요. 사진전에 함께 걸겠습니다.